국내 최고가 아파트를 꼽으라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강 변에 자리 잡은 ‘아리팍’(아크로리버파크)을 많이 떠올린다. 아리팍은 주택시장에 각종 가격 기록을 남겼다. 2013년 11월 강남 재건축 단지로 분양가가 처음으로 3.3㎡당 4000만원을 돌파했다. 평균 3833만원이었는데 10층 이상이 대부분 4000만원 이상이고 최고 4500만원대였다. 84㎡(이하 전용면적)도 최고 15억원을 넘겼다. 2016년 8월 준공 이후 5년 만인 2021년 84㎡가 처음으로 3.3㎡당 1억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1월 46억6000만원 실거래가가 나오며 50억원 고지가 멀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하늘을 찌를 듯하던 아리팍의 기세가 꺾였다. 지난 4월 거의 1년 만에 나온 84㎡ 실거래가는 10층 32억8000만원이었다. 1년 전인 지난해 4월 22층 44억원과 비교하면 1년 새 11억원 넘는 금액이 내린 것이다. 거래가격이 1년 새 10억원 넘게 급락하고 일부 주택형에서 매매값·전셋값 모두 강북 단지들에 뒤지기 시작했다.
아리팍은 투자 수요가 몰리는 경매시장에서도 찬밥이다. 지난해 12월 아리팍 84㎡가 경매에 나왔다. 경매개시 결정이 난 지난해 8월 기준으로 감정가가 42억원이었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 유찰된 뒤 다시 최저가를 20% 더 낮춘 26억8800만원에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법원의 집주인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 결정으로 중단됐다. 감정가보다 15억여원(34%)이나 내린 금액에도 낙찰자를 찾지 못하는 수모를 당할 뻔했다.
아리팍의 전셋값도 확 내렸다. KB국민은행 시세를 보면 84㎡가 2021년 6월 20억원대였지만 현재는 14억원 선이다. 아리팍은 몸값 급락으로 기세가 꺾인 데 이어 자존심마저 상할 일도 생겼다. 최고가 자리를 강북 아파트에 내줘야 할 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같은 전용면적으로 비교하면 공시가 1위는 모두 아리팍 차지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아리팍에서 가장 작은 59㎡ 공시가격이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에 역전됐다. 올해 최고가 기준으로 아리팍은 19억2500만원인데 한남더힐이 20억6800만원이다. 실거래가도 마찬가지다. 아리팍에서 59㎡ 다음으로 큰 84㎡는 성동구 성수동 1가 트리마제에 밀리고 있다. 트리마제는 서울숲을 끼고 한강 조망이 가능한 47층 초고층으로 2017년 준공해 올해 입주 7년 차다. 매매에서는 실거래가, 공시가 모두 트리마제보다 높지만 전세는 사정이 다르다. 전셋값은 KB국민은행 일반 평균가로 아리팍 14억원, 트리마제 24억원으로 무려 10억원이나 차이 난다. 실거래가 신규 계약 최고가는 각각 16억원, 24억5000만원이다. 줄곧 아리팍이 비싸다가 지난해 9월부터 역전되기 시작했다.
아리팍의 하락은 대세를 따른 것이지만 한남더힐과 트리마제 부상은 대세를 거스른 셈이다. 수요가 금리 부담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한남더힐과 트리마제는 아주 드물게 올해 공시가격이 오른 단지이기도 하다. 한남더힐은 ‘용와대’ 등 용산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 ‘신상’인 인근 나인원한남의 약진도 큰 역할을 했다. 트리마제가 있는 뚝섬 일대에선 올해 공시가격 5위인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 성수동 일대가 요즘 젊은 세대의 ‘핫 플레이스’로 뜬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연예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BTS를 포함해 유명 연예인들이 한남더힐·트리마제에 많이 살고 있다. BTS 제이홉이 트리마제 84㎡와 152㎡를 가지고 있고 정국이 69㎡를 소유했다 매각했다. BTS 진은 한남더힐 59㎡를 샀다가 팔았고 208㎡를 매입해 부모에게 증여했다. 당분간 아리팍이 반등하기는 쉽지 않다. 별다른 호재가 없기 때문이다. 주변 재건축이 활발해 새 아파트 입주가 늘면서 입주 8년 차의 아크로리버파크의 지위는 더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앙일보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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